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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1/09 -- 첫눈 오는 날

첫눈 오는 날

2006/11/09 00:56
11월 6일 밤 느닷없이 올해의 첫눈이 내렸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문득 창 밖을 보자 지랄스럽게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눈이 내려버린 월요일, 늦은 저녁,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평소보다 더 고단하다.

지하철 4호선. 첫눈의 기쁨은 없다. 젖은 외투의 퀘퀘함으로 꽉차 있었으며 늦은 저녁식사 또는 일찍 도망쳐 나온 회식자리의 음식냄새가 사람들의 피곤한 하품속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쪽 출입문 옆에는 이런 저런 싸구려 양복을 입은 대여섯의 중년 남자들이 모여서 크게 소리치며 웃고 있다. 평소에는 조용히 신문을 펼쳐들고 분노에 찬 정치 기사들을 읽고 있었을 그들은 오늘 오래간만에 학교 동창을 만난것이다. 거기에 술 한잔으로 세상을 가렸으니 보이는건 그 어린 시절 친구들. 그 시절 기쁨과 그 시절 객기와 그 시절 패기를 눈물겹게 짜내는 구나.
저리 소리를 지르는걸 보니...

반대쪽 출입문에는 뚱뚱한 여고생이 컴컴한 피부에 괴상한 안경을 끼고 스낵을 꾸역 꾸역 먹고 있다. 성장기 조화롭지 못한 몸매에 단정치 못한 교복. 바닥에 떨어진 스낵을 유일하게 깨끗했지만 그래서 더욱 어울리지 않은 하얀 운동화로 밟아 부스러뜨리고 있다.

내 옆에는 세상의 끈적이는건 다 머리에 처발라 뽀족하게 머리를 세운 청년이 서 있다. 복잡한 점퍼와 현란한 바지를 입고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작은 액정화면을 들고 그속에 펼쳐지는 일본만화영화의 세계에 빠져있다. 그 청년이 옆으로 맨 가방이 연신 내 허벅지를 찌른다. 참고 가야 한다. 아무리 밀쳐봐도 그는 현실세계로 돌아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좌석에는 검정색 벨벳으로 투피스는 물론 구두까지 짝을 맞춰 차려 입은 공주가 앉아 있다. 다리는 가지런히 모아 약간 눕혀 앉아 품위를 지킨다. 어디서 배웠는지 미스코리아 후보나 지을만한 가식의 미소를 지으며 여기저기 사람들을 둘러본다. 시선을 피해야 한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궁지에 세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훔쳐보는 흉한 꼽추로 전락해 버린다.

공주 옆 좌석에 졸음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40대 초반 남자를 본다. 잘 차려 입은 멋쟁이 신사다. 아침에 깨끗이 세탁한 셔츠를 입고 나왔음이 분명하다. 고단한 하루는 그 정성스러운 옷들을 무참이도 구겨놨다. 분명한 골격을 하고 있는 호남형 얼굴은 그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힘겹고 두려운 시간이었는지를 말해주듯 야위고 겁먹은 표정으로 굳어져 있다. 세치로 가득한 덥수룩한 머리를 연신 떨구다 문득 깨어 역시나 두려운 얼굴로 정거장 이름을 허둥지둥 살핀다.
고함치며 발길질 하는 하루를 억지로 억지로 타일러 보내고 그는 이제 가정으로 향한다. 휴대전화를 열어 시간을 보다 휴대전화에 있는 어린 딸의 사진을 보고있다. 닫았다 다시 열어 보기를 몇번. 표정의 변화는 없지만 눈빛의 변화는 있다. 그가 휴대전화를 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에서 내린다. 검정색 벨벳의 공주 곁을 떠나 뽀족머리 청년을 지나 소리치는 중년남자 무리 속에서 뚱뚱한 여고생 옆 문으로 내린다. 졸음을 어깨 한가득 올리고 그는 지하철에서 내린다. 그의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비가 눈으로 바뀐 2006년 첫눈 내린 날. 지하철 4호선은 종착역을 한 정거장 남겨놓고 그 수많은 사람들을 펑펑 토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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