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2007/01/31 19:22

나는 개인적으로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실제로는 주사 바늘만 봐도 어질어질하고, 피를 보면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간다. 이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를 보려고 극장에 앉았을 때 영화 시작전 크게 쉼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어야 했다. 너무 굳게 마음을 먹고 본 영화라 그런지 사실 생각보다는 덜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은 주관적인 상황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많인 기괴하고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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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게 보고와서 '판의 미로'에 대한 관객의 평을 읽어 보았다. 대부분 영화의 기괴하고 잔인한 부분에 놀랐고 아름다운 판타지로 광고하더니 속았다는 평이다.  솔직히 영화 홍보를 봐서는 '판의 미로'는 '나니아 연대기' 풍의 아름답고 영웅스러운 판타지를 연상케 한다.
많은 관객들이 나와 같이 잔혹한 영상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의 반응을 봤을 때, '판의 미로'는 그 잔인한 영상으로 하여금 영화의 가치를 평가절하 시켰다. 뿐만 아니라 어울리지 못하는 두가지 주제가 섞여 영화의 촛점이 흐리다고 말하기도 하며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판의 미로'에서의 기괴하고 잔혹한 장면들은 상당히 호소력이 있는 표현이며 그 구성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판의 미로'는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의 악취향으로 하여금 보기 거북한 영화가 되었다고들 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말 수준 이하의 3류 컬트 영화 일 것이다.
'판의 미로'는 그 배경이 된 스페인 내전을 이해해야 한다. 스페인 내전은 다양한 사상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리전 같은 양상으로 발발하였다.
교회, 군부, 지주, 기업가들의 지지를 얻은 국가주의자와 도시 노동자, 농부, 교육 받은 중산층으로 이루어진 공화파. 이 두진영의 양극화가 의미하는 바는 향후 세계 역사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또한 이 양극화는 감정으로 치닫게 되어 스페인 내전은 유래없는 살상극으로 치닫는다. 영화에서 비달 대위의 만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독재정권 편에 있던 사람들을 적절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비달 대위를 비롯하여 독재정권의 군인들이 저지르는 폭력적 잔혹함은 정권의 폭력성과 감정으로 치닫는 내전의 광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광기어린 시절의 정치 이데오르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어린이는 이런 사회적 갈등상황에 환상으로의 도피를 찾는다. 만일 충격적인 잔인한 상황이 연출이 되지 않았다면 소녀의 도피는 단순히 정신이상으로 간주될 것이다. 소녀는 어느정도 보호되고 있지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녀 메르시데스의 행동을 보고 소녀 오필리아는 반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다. 영화속에서 잔혹한 고문이나 전쟁장면은 오필리아와 같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필리아의 아버지는 양복쟁이라는 말에서 아버지가 도시 노동자이자 공화파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전이 빼앗아버린 아버지와 독재 정권의 승리 덕분에 원수와 같은 냉정한 군인에게 재혼하는 어머니 등은 어린 오필리아에게는 끔직한 고문과도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비록 오필리아가 전쟁이라는 또는 실제적인 죽음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필리아가 요정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 만나게 되는 일은 악몽과도 같이 끔찍할 뿐 아니라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오필리아는 그 역겹고 무서운 상황과 마주치면서도 요정의 세계로 가고 싶어 한다. 끔찍한 현실, 그 현실을 환상으로 도피하려는 소녀의 간절함이 '판의 미로'의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으로 하여금 설득력을 높여준다.

수많은 사랑과 감동의 영화가 넘쳐나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이세상 어딘가에서는 오늘도 안타까운 죽음이, 억울한 눈물이, 피의 분노가 그리고 어둠과 같은 좌절이 더러운 고름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위대한 신과 아름다운 요정, 당당한 영웅의 판타지는 전쟁의 공포와 인간에 대한 실망에서 시작되었다고 볼때 영화 '판의 미로'는 낮설고 거친 모습이지만 판타지라고 아니 할 수 없을것이다.

수많은 판타지 영화에서 헐리우드식 이름 붙이기를 한다면 '판타지 비긴즈' 정도 되려나?

++이 글은 2006년 12월 3일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를 보고 쓴 글을 뒤 늦게 올린것 입니다.

macca 감상 , , ,

2007/01/31 19:22 2007/01/3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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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도 잇신 ‘메종 드 히미코’

2006/02/09 01:23
언젠가도 난 일본영화가 별로라고 한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일본영화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취향의 변화라기 보다는 다양성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많은 나라가 있고 그들의 모습과 생각이 모두 틀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느끼게 된 것이다. 조용하고 잔잔한 재미를 느끼려면 일본 영화는 대체로 만족을 준다. 물론 우리나라의 역동성도 좋다. 하지만 무기력하고 추억하고 그냥 보여주는 일본영화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 얼마 전부터 그렇다.

이누도 잇신 영화를 또 한편 보았다. ‘메종 드 히미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후에 두 번째 본 영화다. 두 번째 봤으니 건방지게 작품 보다는 감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이해해 달라 다 그렇게 아는 체하고 없는 것 분석하면서 나름대로 재미를 누리는 나니까.

이누도 잇신 그는 영리하게 화면을 만든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영화는 거칠다. 미국영화는 전형적이라 안전하긴 하지만 다 똑같이 보인다. 유럽영화는 자칫 오버해서 난해해 지기 잘한다. 그가 만드는 화면이 비록 우디 알렌과 같은 능글능글한 영리함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 사이엔가 영화의 미장센을 모두 공유하도록 하는 데는 탁월하다. 어느 장면이 그런가 질문한다면 내가 본 영화 두 개의 전체라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또한 그는 침묵이 전해주는 수많은 말들을 활용할 줄 안다. 어느 영화보다 한 박자 더 길게 잡아 넣는 침묵은 그의 영화 특유의 느릿함과 그 느릿함을 채우는 많은 생각을 동반 하게 한다. 그의 영화는 구차한 설명 보다는 간결한 대화에서 그 의미를 많이 발견하고는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의 동생이 한 말 ‘형 지쳤어?’가 영화 마지막의 구차한 울음이나 설명 보다는 연인의 헤어짐을 더 많이 설명해 준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나는 네가 좋다.’는 히미코의 삶에서 연장된 감정의 한 구석을 게이라는 편견을 제거하고 느끼게 해준다. 이는 구차하게 히미코의 아내의 사진에 대해 구구절절 하게 설명하는 것 보다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는 빛이 주는 느낌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우리가 불안 할 때는 어떻게 세상의 색을 느끼는지, 우리가 행복할 때는 또 어떻게 세상의 색을 느끼는지 아는 듯 하다. 그의 영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화면이 몇 시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들은 낮 설은 시간이고 기쁨의 시간이고 생각의 시간이고 이별의 시간이며 평상의 시간들로 느껴진다.
만일 촬영 때 날씨가 그랬다고 말한다면 난 할말은 없다.

3시간이 넘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요즘 2시간짜리 영화가 그것들 보다 길게 느껴진다.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메종 드 히미코’ 후반에 ‘길다’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의 반복에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지랄 맞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영화 보다는 감독을 더 느끼게 하는지 모르겠다.

macca 감상 , ,

2006/02/09 01:23 2006/02/09 01:23
  1.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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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 바톤핑크를 추억한다.

2005/06/26 23:20
모든 열정은 홍역과 같이 삶의 한 부분을 적시고 지나갈 뿐이다. 열정이 말라버린 지금 그 시절의 추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모두들 그렇듯이 한동안 영화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 있다. 개봉된 영화를 모두 보고 정보를 수집하며 때로는 깊이 영화를 공부하기도 한다. 명화라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명화의 감동에 깊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내 그 시절 본 영화중에 가장 감명 받은 영화는 코엔 형제의 '바톤핑크(Barton Fink)'이다. 존 터투로와 존 굿맨의 두 명의 존이 주연을 맞은 바톤핑크는 그 강렬함과 매우 기발한 영화 아이디어 등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찌는듯한 더위로 호텔의 벽지가 떨어져 늘어지는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간에 같이 있는 듯한 답답함까지 전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매우 좋아하는 배우인 존 굿맨을 이 영화로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 영화는 기억된다. 존 굿맨의 이중적 연기는 정말 가슴을 서늘케 하는 명연기로 기억된다. 다혈질의 순박한 보험설계사에서 끔직한 연쇄살인범으로 변화되던 순간 정말 수많은 영화의 반전을 봐 왔지만 그 장면과 비교되는 유일한 영화의 장면은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 밖에는 없을 정도로 대단하였다.

또한 불에 휩싸인 호텔 복도에서 걸어나와 하는 그의 대사 "사람들이 나를 뚱보라고 놀렸지. 그래서 죽인거야. 하지만 그것 보단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불쌍해서 죽여준 거지. 내가 오히려 도와준 셈이야"와 더불어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는 살면서 보게 되는 모든 광기어린 사건을 대할때면 생각나는 장면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 나는 존 굿맨과 같은 자세로 같은 대사를 날리고 싶어진다.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모든 부분에 열정이 식은 지금 모든 것이 노동으로 다가오고 그것들은 인내를 동반해야 하는 삶의 고통이 되었다. - 존 굿맨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피곤한 노동인것 처럼 말한 것과 같이.

삶은 여러가지로 피곤한 과정인것 같다.

감독
조엘 코엔(Joel Coen)

제작
에단 코엔(Ethan Coen)

각본
에단 코엔, 조엘 코엔

배우
존 터투로(John Turturro)
존 굿맨(John Goodman)
주디 데이비스(Judy Davis)
마이클 러너(Michael Lerner)
존 마호니(John Mahoney)

상영시간
116분

제작사
미국 서클 영화사

제작연도
1991년

macca 감상 ,

2005/06/26 23:20 2005/06/2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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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 관람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4/07/21 23:35
부천영화제 레드카펫을 걸어봤다.- 아랫글에서 구입한 빨간티를 입고~


각종 지자체들이 열고 있는 페스티벌 형식의 행사들은 사실 나에게는 그리 흥미를 끌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영화제 특히 부천 영화제 같은 특징적인 방향성이 있는 영화제라면 약간은 생각이 틀려진다.
오늘은 부천 영화제 중에서 이누도 잇신(Isshin INUDO)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Josee, the Tiger and the Fish)을 관람했다.



나라마다 영화의 특색이 있다. 특히 일본영화는 그 희마리 없는 전개와 끝도 없는 나레이션 그리고 추억과 기억만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별로 흥미 없어 했다. 역시 이 영화도 같은 맥락인데 사실 무지 잼있게 봤다. ^^;



우리나라의 목표 지향보다 어떤면에서 일본의 현재 삶에 대한 애정이 필요할지 모른다.
영화에서든 삶에서든...

macca 일상 속에서 , , ,

2004/07/21 23:35 2004/07/2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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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2를 보았다.

2004/07/09 01:46

원래 '슈렉2'를 보자고 약속한 친구가 먼저 영화를 봐 버렸다.
몇몇이 '슈렉2'를 보자고 말한 걸 극구 사양을 했던터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투덜거렸더니 민수씨가 같이 보잖다. 민수씨도 소심하게 그런걸 가지고 뭘 그러냐고 하지만 한 친구가 딱지 맞을꺼라고 놀리던 차에 현실이 되서 심술이 조금 났다.
영화 보기 전에 극장 앞에서 과일빙수를 같이 먹다 사진을 한컷 찍었다. 조금 먹은 빙수를 이리저리 새것처럼 만들어서 찍었다. ^^;
본 영화를 나를 위해 또 한번 봐준 민수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macca 일상 속에서 ,

2004/07/09 01:46 2004/07/0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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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冥想錄)에서

2004/05/20 03:41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면 주인공 막시무스가 존경하는 대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 121.4.26~180.3.17)가 나온다. 실제 역사에서는 비록 아우렐리우스가 막시무스를 총애한것은 사실이나 황제의 자리를 주거나 아우렐리우스가 아들에게 살해 당하고 막시무스가 검투사가 되거나 하지 않았다. 막시무스는 아우렐리우스가 진중에서 죽고 난 후에도 수년간 변방 사령관의 직위를 수행했다고 한다.

내 어릴적 책장에서 꺼내든 책 중에서 '명상록'이라는 책이 있다. 너무 어린시절 책이라는 것을 끝까지 읽어봐야겠다고 읽은 책이기에 전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지금 기억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사실 10대 중반에 읽기에는 스토아 철학의 철학서와 다름없는 '명상록'은 매우 어려운 책이었다. 하지만 '글래디에이터'를 보았을 때 내가 어렸을 때 읽은 '명상록'의 저자가 바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오늘 나는 명상록의 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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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자신에게 타일러라.
나는 오늘도 남의 일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건방진 사람, 신의가 없는 사람, 질투심이 많은 사람, 이기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모두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오만함, 질투심, 쓸데없는 간섭, 배은망덕 등이 나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 중의 누구도 내가 스스로 원하지 않는한, 나를 추악한 일에 끌어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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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대한 나의 변명을 꾸짓는 듯한 글이다.
내 삶의 주체는 나라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을 새삼 깨닭게 만드는 글이다.
너무 기본에 멀어져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더 비극은 내가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은혜를 모르는 사람, 건방진 사람, 신의가 없는 사람, 질투심이 많은 사람, 이기적인 사람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macca 삶의 목표를 향해서 , , ,

2004/05/20 03:41 2004/05/20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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