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자유는 없다.

2009/12/08 15:01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친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스타파 몬드는 어깨를 추슬렀다.

“마음대로 하게”하고 그가 말했다.


올더스 헥슬리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이덕형 옮김

Brave New World : A. L. Huxley

전체주의인 미래사회에서 무식하고 원시적인 사내가 총통에게 자유를 요구합니다.
신과 위험과 자유와 선과 죄를 요구합니다.
나이를 먹고 추해질 권리, 병에 걸릴 권리, 굶주릴 권리 고민에 시달릴 권리 그러니까 불행해질 권리 바로 자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락한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안 지금도 안락한 상상 속에 자유를 갈망합니다.
고독할 자유를, 슬퍼할 자유를, 자괴감에 자신을 죽일 권리를...



macca 감상 , , ,

2009/12/08 15:01 2009/12/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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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를 느끼다 -르네 마그리트 전시를 보고서

2007/02/14 00:55
그림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 나로서는 차라리 초현실주의가 맘에 편하다. 그림의 역사적인 의미나 종교적인 상징을 생각하지 않고도 그림을 느낄 수 있을 뿐더러 그림에 조류에 대해서도 복잡하게 따지지 않아도 된다. 단지 초현실주의라고 알면 그뿐이고 그림이 기괴하고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초현실주의라고 생각하면 역시 그뿐인 것이다.  작가의 꿈에 공감하고 그림 자체의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면 된다. 이것이 초현실주의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이며 그림을 힘들어 하는 실제 이유인 것이다.
내가 ‘클래식 공연은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몰라서 힘들다’고 했더니 클래식 공연 기획을 했다던 친구는 ‘박수를 치고 싶을 때 치면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일지 몰라도 그게 그렇게 되나?
내가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부자연스러움은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모르는 그런 어색하고 눈치봐야 하는 상황과 비슷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라면 편하다. 모든게 초현실이라는 단어로 용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초현실주의에 관심을 가지는 진짜 이유는 그 그림들을 느끼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니던 시절은 음악(대중음악)을 듣는다는 사람들은 모두 아트락 또는 프로그래시브 락에 심취해 있었다. 어떤 FM DJ의 영향이라고 보면 될만한 사회현상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열정적이었다. LP시절의 레코드판은 12인치 디스크를 커버하는 커다란 앨범자켓이 있었으며 자켓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핑크 플로이드를 연호하였을 때 나는 역시나 주류에서 약간 벗어나 제네시스(Genesis)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The Foxtrot cover
Genesis, Foxtrot, 1972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이 팀의 리더로 있던 제네시스의 초기 앨범들은 당대에 핑크 플로이드와 쌍벽을 이루는 프로그래시브 밴드로 제네시스를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환상적인 그리고 드라마틱한 음악을 들을 때면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앨범 자켓을 유심히 관찰했다. 여우의 얼굴을 한 여인의 그림과 기괴한 간호사의 모습 그런 그림들을 유심히 보면서 그 안에서 무언가 느낄 수 있는 어떠한 이미지와 연관지을 수 있는 훈련이 된 것 같다.

Nursery Cryme
Genesis, Nursery Cryme, 1971

제네시스의 초기 세개의 앨범 자켓의 일러스트를 그린 사람은 카리스마 레코드(Charisma Records)의 전속 아티스트인 ‘폴 화이트헤드’(Paul Whitehead)다. 그는 초현실주의 경향의 앨범 커버 아티스트이다. 그와 가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초현실주의 작가는 ‘르네 마그리트’이다.

Golconda, 1953백지 위임장,  1965
Rene Magritte , Golconda, 1953             백지 위임장, 1965

얼마전에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회를 보고 왔다. ‘폴 화이트헤드’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폴 화이트헤드’는 ‘르네 마그리트’의 색과 느낌을 이어 받았을 것이다. ‘폴 화이트헤드’가 좀도 상업적인 일러스트였지만 말이다.
나는 그들의 그림에서 내 어린 날의 햇살과 열정 그리고 그 시절을 상징하는 몽환으로 빠져드는 음악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나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초현실주의를 이해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방식은 예술을 느끼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고 예술을 느끼는 유일할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macca 감상 , , , ,

2007/02/14 00:55 2007/02/14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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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

2007/01/31 19:22

나는 개인적으로 잔인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실제로는 주사 바늘만 봐도 어질어질하고, 피를 보면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간다. 이와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를 보려고 극장에 앉았을 때 영화 시작전 크게 쉼호흡을 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어야 했다. 너무 굳게 마음을 먹고 본 영화라 그런지 사실 생각보다는 덜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은 주관적인 상황이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많인 기괴하고 잔인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를 좋게 보고와서 '판의 미로'에 대한 관객의 평을 읽어 보았다. 대부분 영화의 기괴하고 잔인한 부분에 놀랐고 아름다운 판타지로 광고하더니 속았다는 평이다.  솔직히 영화 홍보를 봐서는 '판의 미로'는 '나니아 연대기' 풍의 아름답고 영웅스러운 판타지를 연상케 한다.
많은 관객들이 나와 같이 잔혹한 영상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의 반응을 봤을 때, '판의 미로'는 그 잔인한 영상으로 하여금 영화의 가치를 평가절하 시켰다. 뿐만 아니라 어울리지 못하는 두가지 주제가 섞여 영화의 촛점이 흐리다고 말하기도 하며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판의 미로'에서의 기괴하고 잔혹한 장면들은 상당히 호소력이 있는 표현이며 그 구성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판의 미로'는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의 악취향으로 하여금 보기 거북한 영화가 되었다고들 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 영화는 정말 수준 이하의 3류 컬트 영화 일 것이다.
'판의 미로'는 그 배경이 된 스페인 내전을 이해해야 한다. 스페인 내전은 다양한 사상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대리전 같은 양상으로 발발하였다.
교회, 군부, 지주, 기업가들의 지지를 얻은 국가주의자와 도시 노동자, 농부, 교육 받은 중산층으로 이루어진 공화파. 이 두진영의 양극화가 의미하는 바는 향후 세계 역사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또한 이 양극화는 감정으로 치닫게 되어 스페인 내전은 유래없는 살상극으로 치닫는다. 영화에서 비달 대위의 만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독재정권 편에 있던 사람들을 적절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비달 대위를 비롯하여 독재정권의 군인들이 저지르는 폭력적 잔혹함은 정권의 폭력성과 감정으로 치닫는 내전의 광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광기어린 시절의 정치 이데오르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 어린이는 이런 사회적 갈등상황에 환상으로의 도피를 찾는다. 만일 충격적인 잔인한 상황이 연출이 되지 않았다면 소녀의 도피는 단순히 정신이상으로 간주될 것이다. 소녀는 어느정도 보호되고 있지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하녀 메르시데스의 행동을 보고 소녀 오필리아는 반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다. 영화속에서 잔혹한 고문이나 전쟁장면은 오필리아와 같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필리아의 아버지는 양복쟁이라는 말에서 아버지가 도시 노동자이자 공화파였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전이 빼앗아버린 아버지와 독재 정권의 승리 덕분에 원수와 같은 냉정한 군인에게 재혼하는 어머니 등은 어린 오필리아에게는 끔직한 고문과도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비록 오필리아가 전쟁이라는 또는 실제적인 죽음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필리아가 요정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 만나게 되는 일은 악몽과도 같이 끔찍할 뿐 아니라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오필리아는 그 역겹고 무서운 상황과 마주치면서도 요정의 세계로 가고 싶어 한다. 끔찍한 현실, 그 현실을 환상으로 도피하려는 소녀의 간절함이 '판의 미로'의 기괴하고 잔인한 장면으로 하여금 설득력을 높여준다.

수많은 사랑과 감동의 영화가 넘쳐나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못하다. 이세상 어딘가에서는 오늘도 안타까운 죽음이, 억울한 눈물이, 피의 분노가 그리고 어둠과 같은 좌절이 더러운 고름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위대한 신과 아름다운 요정, 당당한 영웅의 판타지는 전쟁의 공포와 인간에 대한 실망에서 시작되었다고 볼때 영화 '판의 미로'는 낮설고 거친 모습이지만 판타지라고 아니 할 수 없을것이다.

수많은 판타지 영화에서 헐리우드식 이름 붙이기를 한다면 '판타지 비긴즈' 정도 되려나?

++이 글은 2006년 12월 3일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를 보고 쓴 글을 뒤 늦게 올린것 입니다.

macca 감상 , , ,

2007/01/31 19:22 2007/01/3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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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도 잇신 ‘메종 드 히미코’

2006/02/09 01:23
언젠가도 난 일본영화가 별로라고 한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일본영화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취향의 변화라기 보다는 다양성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많은 나라가 있고 그들의 모습과 생각이 모두 틀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느끼게 된 것이다. 조용하고 잔잔한 재미를 느끼려면 일본 영화는 대체로 만족을 준다. 물론 우리나라의 역동성도 좋다. 하지만 무기력하고 추억하고 그냥 보여주는 일본영화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 얼마 전부터 그렇다.

이누도 잇신 영화를 또 한편 보았다. ‘메종 드 히미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후에 두 번째 본 영화다. 두 번째 봤으니 건방지게 작품 보다는 감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이해해 달라 다 그렇게 아는 체하고 없는 것 분석하면서 나름대로 재미를 누리는 나니까.

이누도 잇신 그는 영리하게 화면을 만든다. 이런 부분에서 한국영화는 거칠다. 미국영화는 전형적이라 안전하긴 하지만 다 똑같이 보인다. 유럽영화는 자칫 오버해서 난해해 지기 잘한다. 그가 만드는 화면이 비록 우디 알렌과 같은 능글능글한 영리함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 사이엔가 영화의 미장센을 모두 공유하도록 하는 데는 탁월하다. 어느 장면이 그런가 질문한다면 내가 본 영화 두 개의 전체라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또한 그는 침묵이 전해주는 수많은 말들을 활용할 줄 안다. 어느 영화보다 한 박자 더 길게 잡아 넣는 침묵은 그의 영화 특유의 느릿함과 그 느릿함을 채우는 많은 생각을 동반 하게 한다. 그의 영화는 구차한 설명 보다는 간결한 대화에서 그 의미를 많이 발견하고는 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의 동생이 한 말 ‘형 지쳤어?’가 영화 마지막의 구차한 울음이나 설명 보다는 연인의 헤어짐을 더 많이 설명해 준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나는 네가 좋다.’는 히미코의 삶에서 연장된 감정의 한 구석을 게이라는 편견을 제거하고 느끼게 해준다. 이는 구차하게 히미코의 아내의 사진에 대해 구구절절 하게 설명하는 것 보다 확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는 빛이 주는 느낌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우리가 불안 할 때는 어떻게 세상의 색을 느끼는지, 우리가 행복할 때는 또 어떻게 세상의 색을 느끼는지 아는 듯 하다. 그의 영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화면이 몇 시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들은 낮 설은 시간이고 기쁨의 시간이고 생각의 시간이고 이별의 시간이며 평상의 시간들로 느껴진다.
만일 촬영 때 날씨가 그랬다고 말한다면 난 할말은 없다.

3시간이 넘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요즘 2시간짜리 영화가 그것들 보다 길게 느껴진다.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메종 드 히미코’ 후반에 ‘길다’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의 반복에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지랄 맞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영화 보다는 감독을 더 느끼게 하는지 모르겠다.

macca 감상 , ,

2006/02/09 01:23 2006/02/09 01:23
  1.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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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의 시 '아가야'

2005/09/09 14:43
아가야


해뜨기 전 새벽 중간쯤 희부연 어스름을 타고 낙심을 이리처럼 깨물며, 사직공원 길을 간다. 행인도 드문 이 거리 어느 집 문 밖에서 서너살 됨직한 잠옷 바람의 애띤 개집애가 울고 있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웬일일까? 개와 큰집 대문 밖에서 유리 같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이 애기는 왜 울고 있을까? 오줌이나 싼 그런 벌을받고 있는 걸까? 자주 뒤돌아 보면서 나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아가야, 왜 우니? 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
무슨 슬픔 당했다고, 괴로움이 얼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
이 새벽 정처없는 산길로 헤매어 가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가야, 너에게는 그 문을 곧 열어줄 엄마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게는 그런 사랑이 열린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마!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macca 감상 , Keyword 천상병

2005/09/09 14:43 2005/09/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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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 바톤핑크를 추억한다.

2005/06/26 23:20
모든 열정은 홍역과 같이 삶의 한 부분을 적시고 지나갈 뿐이다. 열정이 말라버린 지금 그 시절의 추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모두들 그렇듯이 한동안 영화에 심취해 있던 시절이 있다. 개봉된 영화를 모두 보고 정보를 수집하며 때로는 깊이 영화를 공부하기도 한다. 명화라는 영화를 찾아서 보고 명화의 감동에 깊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내 그 시절 본 영화중에 가장 감명 받은 영화는 코엔 형제의 '바톤핑크(Barton Fink)'이다. 존 터투로와 존 굿맨의 두 명의 존이 주연을 맞은 바톤핑크는 그 강렬함과 매우 기발한 영화 아이디어 등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찌는듯한 더위로 호텔의 벽지가 떨어져 늘어지는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공간에 같이 있는 듯한 답답함까지 전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매우 좋아하는 배우인 존 굿맨을 이 영화로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 영화는 기억된다. 존 굿맨의 이중적 연기는 정말 가슴을 서늘케 하는 명연기로 기억된다. 다혈질의 순박한 보험설계사에서 끔직한 연쇄살인범으로 변화되던 순간 정말 수많은 영화의 반전을 봐 왔지만 그 장면과 비교되는 유일한 영화의 장면은 '유주얼 서스펙트'의 마지막 장면 밖에는 없을 정도로 대단하였다.

또한 불에 휩싸인 호텔 복도에서 걸어나와 하는 그의 대사 "사람들이 나를 뚱보라고 놀렸지. 그래서 죽인거야. 하지만 그것 보단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불쌍해서 죽여준 거지. 내가 오히려 도와준 셈이야"와 더불어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는 살면서 보게 되는 모든 광기어린 사건을 대할때면 생각나는 장면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 나는 존 굿맨과 같은 자세로 같은 대사를 날리고 싶어진다.
"내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아?"
모든 부분에 열정이 식은 지금 모든 것이 노동으로 다가오고 그것들은 인내를 동반해야 하는 삶의 고통이 되었다. - 존 굿맨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피곤한 노동인것 처럼 말한 것과 같이.

삶은 여러가지로 피곤한 과정인것 같다.

감독
조엘 코엔(Joel Coen)

제작
에단 코엔(Ethan Coen)

각본
에단 코엔, 조엘 코엔

배우
존 터투로(John Turturro)
존 굿맨(John Goodman)
주디 데이비스(Judy Davis)
마이클 러너(Michael Lerner)
존 마호니(John Mahoney)

상영시간
116분

제작사
미국 서클 영화사

제작연도
1991년

macca 감상 ,

2005/06/26 23:20 2005/06/2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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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오면...

2005/04/26 00:37
내 어릴적 한동안 꽃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을때가 있었다. 그때는 신기한것 번쩍이는 것만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맑은 하늘과 그 아래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는 것이 꽃의 아름다움의 감상을 넘어서 삶의 순간을 꽃봉오리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상명대학교 뒤 등산로에는 봄마다 벗꽃이 만개한다. 몇년을 이곳에 있었지만 올 봄에 처음으로 꽃구경을 했다.

귀하다는 창덕궁의 능수매화. 능수매화가 이토록 아름답게 핀것을 볼 수 있게 시기를 잘 맞춰 창덕궁을 방문하게 된것은 행운이라 생각한다.

우리집은 먹골배 산지에 위치해 있다. 봄 어느날 삼일정도 잠깐 피었다 사리지는 배꽃은 순간이지만 우리 지역을 흰색 꽃으로 덮어 버린다.

꽃과 화초에 애정이 많으신 어머니는 봄이되면 꼭 화원에 들러 꽃과 화초를 구입하시곤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들른 화원에서 일년생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macca 감상

2005/04/26 00:37 2005/04/2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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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오면

    봄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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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 Tree

2004/07/23 10:25
난 여기 따분한 방에 앉아있어 일요일 오후에 또 비가 오는군
아무 할 일도 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
그냥 서성거리면서 당신을 기다리지만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난 차를 타고 돌아 다니고 있어 너무 빨리 달리고 있어
너무 멀리까지 왔어 내 관점을 바꾸고 싶어
난 너무 외로워 당신을 기다리지만
왜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걸까

어찌된 일인지, 왜 그런지 궁금해
어제 당신은 내게 파아란 하늘에 대해 얘길 했지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건 단지 노란 레몬 나무 뿐인걸
고개를 위아래로 돌려 보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고 또 둘러 봐도
내게 보이는 건 단지 레몬 나무밖에 없는 걸

난 이제 여기 앉아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부러워
나가서 샤워라도 하고 싶지만 내 머리 속엔 짙은 먹구름만 잔뜩 끼었어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군
왜 그럴까

외로움을 난 정말 참을 수 없어
혼자서 레몬 나무에 앉아 있기는 정말 싫어

기쁨이 메말라 버린 사막을 걷고 있는거야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애인을 찾게 되면 많은 일들이 생길거야
그럼 당신이 의아해 하겠지

어찌된 일인지, 왜 그런지 궁금해
어제 당신은 내게 파아란 하늘에 대해 얘길 했지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건 단지 노란 레몬 나무 뿐인걸
고개를 위아래로 돌려 보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고 또 둘러 봐도
내게 보이는 건 단지 레몬 나무밖에 없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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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l's Garden의 Lemon Tree 가사를 번역한 것이다.
노래는 밝고 신나는데 가사는 내 맘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애인을 찾게 되면 많은 일들이 생길거야
그럼 당신이 의아해 하겠지....

macca 감상

2004/07/23 10:25 2004/07/2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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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 녹차 - 말차

2004/07/02 01:31

어제 작은 다실에서 말차를 마셨다.
말차를 만드는 모습을 처음 봤을 뿐더러 처음 거품이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무슨 녹즙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마셔보았을 때 너무 그 맛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멋진 향과 맛의 녹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차
말차는 옥로차와 같은 방법으로 재배한 차잎을 증기로 찐 다음 그대로 건조하여 멧돌로 미세하게 갈아만든 제품이다. 차 잎 성분을 그대로 섭취할수 있는데, 특히 물에 녹지 않는 비타민 A나 토코페롤, 섬유질 등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어 건강 유지와 피로 회복에 효과적이다.
출처 : 녹차사랑

macca 감상 ,

2004/07/02 01:31 2004/07/0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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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2004/05/12 01:48

봄비가 자주 내린다.
축축한 몸을 말리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을 통해 사람들을 본다. 비를 본다. 비 속에 사람들을 본다.
비가 세상을 맑게 만들어 주었지만 내 마음속의 감성은 흐리게 만들어 주었다.
하루 종일 스쳐지나가는 모든 일들에 내 몸과 마음은 부끄럽다.
심약해진 내 마음에 비로 변명을 해 본다.

macca 감상

2004/05/12 01:48 2004/05/1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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